1. 서론
이상(李箱, 1910~1937)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발표한 시, 소설, 수필 등에서 전통 문학 문법을 탈피하고, 인간 내면의 불안, 해체된 자아, 비논리적 상상력 등을 파격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이상의 시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와 연결되는 특징을 지니며, 이는 당대 한국 문단에 큰 충격과 영향력을 끼쳤다. 본고에서는 초현실주의 문학의 개념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상 시에 내재된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2. 초현실주의 문학의 개념과 배경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192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예술 사조로, 논리와 현실을 초월한 무의식, 꿈, 본능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둔다.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1924)』에서 출발한 이 사조는 무의식의 흐름, 자동기술, 이미지의 비논리적 결합 등을 특징으로 한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현실을 지배하는 이성, 질서, 합리성을 해체하고 무의식 속 진실에 접근하려는 문학적 시도를 강조한다. 시에서는 기묘한 이미지, 비논리적 문장 배열, 해체된 주어-서술 관계 등으로 나타난다.
3. 이상 시의 초현실주의적 특징 분석
이상의 시 세계는 1930년대 한국 문단에서 드물게 유럽 아방가르드 문학과 직접적으로 호응한 작품 세계로, 특히 초현실주의와의 유사성이 두드러진다. 그 대표적 작품인 「오감도(烏瞰圖)」 연작은 물론, 「건축무한육면각체」, 「거울」, 「이런시」 등에서 초현실주의적 기법이 적극 활용된다.
1) 「오감도」의 해체적 구조와 언어 실험
「오감도 제1호」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로 시작하는 시로, 문법적 문장 구조를 철저히 파괴하고 반복, 분열, 생략, 기이한 이미지로 구성된다.
- “무서워하는 아해들을 위하여 / 무서워하는 아해들에게로”와 같은 반복적 표현은 비논리적 리듬을 형성하며, 현실보다는 심리적 환상과 공포를 강조한다.
- 등장하는 아해들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무의식 속 불안의 상징이며, 죽음의 공포와 해체된 자아를 나타낸다.
이는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무의식적 이미지의 나열 기법과 유사하며,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2) 「거울」과 자아의 이중성
「거울」은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아와 타자의 경계 붕괴, 이중적 자아를 시적으로 구현한다.
- “나는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 그러나 그 속에 내가 아닌 내가 있었다.”는 구절은 초현실주의적 자아 분열과 내면 세계의 해체를 상징한다.
- 거울 속 인물은 현실의 자아가 아니라, 무의식에 잠재된 또 다른 자아의 형상이며, 초현실주의 문학에서 핵심적인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3) 「건축무한육면각체」의 기하학적 상상력
이 시는 제목부터 기하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육면각체’를 언급하며, 현실의 공간 질서와 이성의 규칙을 해체한다.
- 시어들은 공간과 사물의 실제성을 거부하고, 추상적 이미지와 수학적 개념의 결합을 통해 독자에게 인식의 혼란을 일으킨다.
- 이는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비이성적 질서의 창출이며, 문학과 과학, 시와 수학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으로 볼 수 있다.
4. 문학사적 의의와 초현실주의의 수용 양상
이상의 시는 단순한 모더니즘 시도를 넘어서, 한국 문학의 초현실주의적 가능성을 연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는다. 그는 전통 서정시 중심의 시 세계를 탈피해, 언어 자체의 기능을 실험 대상으로 삼으며, 독자에게 낯선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이상의 초현실주의는 유럽 문학의 단순 모방이 아니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의 불안, 정체성의 해체, 생존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을 담고 있으며, 이는 조선 근대인의 무의식적 현실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시 세계는 이후 김수영, 김춘수, 그리고 1970년대 실험시인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며 한국 시의 지평을 넓혔다.
5. 결론
이상의 시는 초현실주의 문학의 기법과 정신을 한국 문학에 독자적으로 접목한 선구적 시도였다. 그의 작품은 논리와 이성을 넘어, 무의식과 꿈, 상상력의 세계를 해체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상은 단지 실험적인 시인이 아니라, 시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고든 초현실주의적 예언자였으며, 그 문학적 가치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참고문헌
- 이상(1934), 「오감도」, 《조선중앙일보》
- 앙드레 브르통(1924), 『초현실주의 선언』
- 김윤식·김현(1993), 『한국문학사』, 민음사
- 장석주(2004),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문학동네
- 김종회(2010), 「이상 시의 초현실주의적 성격」, 《현대문학연구》 제22호